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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친이_주는_첫문장으로_글쓰기 / 죽음은 가혹하고 냉정해.



*글 내용과 현실 인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글 내에 나오는 관계는 가족 혹은 선후배, 친우 관계입니다.

*날조입니다.

*뜰팁 장기상황극 밤을보는눈의 각별의 과거 시점입니다.







 죽음은 가혹하고 냉정해. 인턴 시절, 저 자신을 가르치던 원장님이 항상 수술이 끝나 지친 모습에서 하던 말이였다. 유능하고 수없이 많은 생명을 살려내신 원장님의 말씀은 그때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주변에 흔하지 않던 시절일 때엔 더더욱 그랬다.


 인턴 기간이 끝나 저를 가르치던 원장님이 계신 병원에 레지던트로서 일하기 시작하던 때, 외과 수술이 급해 생명의 줄이 가느다랗게 남은 환자가 들어왔다. 허나 병원의 원장님을 포함한 자신의 윗 선배들은 이미 꽉찬 스케쥴로 바빠 환자를 맡을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 의사라는 직책의로서 자만해서는 안됐었는데,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컵에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환자의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치하여 원장님을 기다렸다면 상황은 바뀌었을 지도 몰랐을 거라 생각했다. 가느다랗게 남은 생명의 줄은 제 손짓 하나로 끊겨버렸고 제 입으로 환자의 사망 시각을 부르며 원장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은 가혹하고 냉정해. 그 말은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닌,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가족이 보고싶었다. 제 자신을 사랑해주는 두 부모님과 자신의 하나뿐인 형, 공룡. 그들이라면 제 지친 모습에 상냥하게 위로해 줄 거라 믿으면서도 어릴 적 모든 관심을 받고 자란 형과, 그 치우친 애정 속에 아무렇지 않은 척, 착한 아들이자 착한 동생으로서 지내왔던 때. 그리고 자신의 형이 실패하고, 제 자신이 성공했을 적에 손바닥 뒤집듯 치우쳐 온 애정을 생각하면 자신이 한 일에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도 제 형이라면 자신을 이해해 줄 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아무리 다른 애정속에 자라왔다 해도 서로 만큼은 이해하려 했으니까. 그리 생각하던 와중에 제 손은 자신도 모르게 제 형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형은 자신보다 더욱 피곤한 목소리였다. 제 전화를 받아주었음이 기쁜 마음에 제 형을 부르려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피곤한 목소리가 모든 생각을 허공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자신 또한 이리 힘든데, 자신보다 더 예전부터 힘들게 일해왔을 제 형은 자신보다 배로 피곤할텐데.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세요? 각별아?


 전화를 받은 채 말 없이 가만히 있던 것이 오히려 걱정을 하게 만든 듯 전화기 너머 형의 목소리에 의문이 묻어있었다. 피곤한 사람을 붙잡는 것도, 제 힘듬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미안한 일이겠지.


"아, 형. 별일 아니야. 그냥... 잘 지내나 물어보려고 연락했지."


-...별 일이야 있겠니. 회사원이 지내는 게 똑같지. 너도 별일 없지?


갑자기 전해지는 안부 인사가 쑥스럽기라도 한 듯이 전화너머로 멋쩍은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자신이 하려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서로의 안부가 건네지자 통화가 조용해졌다. 괜히 더 조용히 있다간 더 걱정을 살 것 같아 적막을 깨기 위해 다시끔 말을 건넸다.


"...동희도 잘 지내지? 언제 한번 시간내서 동희랑 놀러 와. 그땐 내가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내 줄게."


-네 덕분에 우리 동희 건강은 걱정 없겠다. 시간이 늦어서 먼저 끊을게.


전화 너머로 들리는 웃음 소리에 자신 또한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몸 조심하고, 너도. 그렇게 통화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의 화면이 꺼졌다. 방금까지 제가 죽인 환자에 대해 고민하며 침울하던 자신이 겨우 가족의 웃음소리 하나로 기분이 나아진다는 게 괜한 부도덕함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가족 만큼은 죽음에서 지켜낼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 다짐했다.







 후에는, 그 다짐조차 지킬 수 없는 의사가 되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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